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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IEW Finder (2022년 2월호)

    원장 칼럼

    기독교세계관의 첫 질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진정으로 참된 최고의 실재는 무엇인가?” 제임스 사이어는 이 질문을 세계관이 답해야 하는 일곱 가지 질문 중 첫 질문으로 꼽는다. 사이어는 이 질문에 대해 “하나님, 여러 신들, 물리적 우주”가 가능한 대답들이며, 기독교 유신론의 답은 “하나님”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하나님 이해는 기독교 세계관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그러나 단순히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명확히 알 때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과 함의를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성경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된다. 사이어도 하나님을 아는 데 성경이 근본임을 지적하며, 무엇보다 예수님이 하나님에 대한 가장 충만하고 명료한 계시임을 확언한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가장 명확하고 정확히 알 수 있다.

    첫째, 예수님의 탄생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을 보여 준다.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시라는 것은 기독교의 중요한 신앙고백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사실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믿기 어려울까? 현대인들은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게 느낄지 모르지만, 초대교회 시대에는 그 반대의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영지주의의 가현설은 예수님이 사람으로 보였을 뿐 진짜 사람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요한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선언하며, 요한일서는 예수 사건을 “듣고, 눈으로 보고, 자세히 보고, 손으로 만져본” 일임을 분명히 하고, 요한이서는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던 것을 부인하는 자”는 “미혹하는 자”라고 비판한다(요 1:14; 요일 1:1; 요이 7절).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또한 분명 사람이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인성만 드러나는 것 같은 순간에도 여전히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이다. 폭풍을 만난 배 안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던 순간에도, 새벽에 길을 가다가 배가 고프셨던 순간에도, 죄인들과 친구이자 먹보에 술꾼이라는 비난을 받으실 때도, 죽은 나사로 앞에서 우시던 순간에도, 무엇보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도 그분이 하나님이 아닌 때는 한 순간도 없었다(막 4:38; 마 21:18; 눅 7:34; 요 11:35). 예수님이 사람이셨다는 사실은 신성과 인간성이 공존할 수 있음을,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이 배치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예수님의 신성은 인간성을 배제하지 않고 그것을 담아냈다.

    사람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으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으로 사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기독교 세계관은 인성을 신성과 반대되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쏟아붓는 성육신의 사랑을 보여 주는 가운데 인성을 품어 낸 신이 기독교의 하나님이다(빌 2:6-11). 참 사람 됨이 참 하나님 됨의 반대가 아니라는 것이 기독교 세계관의 하나님 이해다.

    둘째, 예수님의 죽음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을 보여 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구원과 관련된 문제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사실은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메시아의 약함을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행하신 행위는 모든 형태의 능력과 권위를 다 뒤엎어버린다. 실제로 그리스도는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시고, 이 약함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시다….이처럼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 거하는 자리요 그 능력을 보여 주는 계시가 되시는 이유는 오직 그가 약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존재이시기 때문이다. 바울이 볼 때, 그리스도는 약함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약함이 진정한 강함이며, 죽음이 진정한 생명의 길임을 보여 주신다. 또한 십자가 사건은 고통의 자리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기독교의 하나님임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이 고난을 정당하게 여기심을 보여 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고난당하는 자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셋째, 예수님의 부활은 정의를 세우시는 하나님을 보여 준다. 부활을 소망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려는 욕망을 품는 것이 아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죽음의 현실 앞에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나라의 통치를 소망하며 지금 고난의 현장에서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신성과 함께 인성을 품으신 하나님, 십자가에서 고난당하는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신 하나님, 정의를 세우시는 하나님, 이것이 예수님의 탄생, 죽음, 부활을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명확한 모습이다. 이런 하나님이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이다.

    VIEW에 방문교수로 와 계신 경북대 국어교육학과의 류동규 교수님이 전성민 교수님의 “기독교 세계관 기초” 강의를 청강하시며 느낀 점을 나누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류교수님의 블로그blog.naver.com/ryusway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류동규 교수의 청강일기 (6)

    다원주의 사회의 기독교

    현대 기독교는 다원주의 사회 속에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기도했던 미국의 한 목사가 ‘모든 종교의 이름으로, 아멘’으로 마무리한 것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의 자리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미국 의회에서 또 다른 목사가 ‘Amen’ 대신 ‘A-men, A-women’으로 기도를 마친 사례도 있다. 종교적 의미에서 다원주의란 종교적 신앙 체계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는데, 기독교로서는 이런 상황이 불편하다.

    얼마 전 한국의 기도회에서 어느 목사가 설교 중에 바이든 취임식 기도 영상을 보여준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장면은 뷰 원우들 사이에서도 작은 이슈가 됐다. 이 목사는 미국의 어느 한인교회를 담임하면서 미국에서도 지명도가 있는 분인 듯, 자신이 미국 의회에서 기도한 적도 있다는데, 거기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다는 이유로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한인 목사가 미국 의회에서 공개적으로 기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미국 사회의 다원주의적, 다문화주의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일 텐데, 이 한인 목사가 근본주의를 고수했다는 이유로 찬사를 받았다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바이든 취임식에서의 이 기도 장면을 어떻게 봐야 할까? 우선 이 장면이 만들어내는 위기 담론과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짚어보기로 하자. 이 장면이 한국 교회의 설교에 소환될 때 이는 교회의 위기 담론 속에 자리 잡아 그것을 부추긴다. 사실 교회의 위기 담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런 정도의 전통 파괴는 꽤 충격적이고 자극적이다. 위기 담론은 이 자극적인 소재를 양자택일적 물음으로 바꾼다. 당신은 예수의 편에 설 것인가, 세상 모든 종교의 편에 설 것인가. 하지만 이 양자택일적 물음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점에서 정당한 물음이 아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포기할 수 없는 특권이요 신앙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의 표명은 엄밀하게 말해 이 장면이 제기하는 물음과는 거리가 있다.

    위기 담론의 부정적인 효과는 또 있다. 위기 담론이 대개 그렇듯이 이 경우에도 외부의 위기를 말함으로써 내부의 문제에 대해 눈감게 하지 않는지 따져볼 일이다. 또 위기 담론은 일종의 자기충족적 예언과도 같아서 지금 말한 그 위기가 오래 지나지 않아 그대로 실현된다! 목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도 못할만큼 미국 기독교가 위기에 처했고 미국 교회가 이 정도면 한국 교회도 머지않아 그렇게 된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자기충족적 예언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좋은 뜻에서 위기를 말하려면 이 위기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살피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뜻을 모아야 것인데, 위기 담론은 그렇지 않다. 상황을 단순화함으로써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더 나아가 그 위기가 결국 실현될 것을 전제함으로써 위기 담론은 스스로 위기의 원인과 결과가 되어 위기의 악순환을 작동시킨다.

    이 장면이 제기하는 더 나은 물음은 다음과 같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는 타종교, 타문화와 어떻게 만나야 할까? 여기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관용의 태도일 것이다. 그 하나의 예로 리처드 마우가 『무례한 기독교』에서 말하는 ‘시민교양’이라는 개념을 참고할 수 있다.

    이 책의 원제는 ‘Uncommon decency’이다. 직역하면 ‘비상한 품위’ 정도가 된다. ‘다원주의 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시민교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풀러신학교 총장인 이 책의 저자는 다원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윤리로 ‘시민교양’을 제안하고 있다. ‘시민교양’은 civility의 번역어로, 정중함, 공손함, 예의바름 등을 뜻하는 단어다. 그런데 이 시민교양이 왜 ‘비상한 품위’일까? 저자는 품위 있고 온유한 태도를 지니면서도 동시에 신념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신념을 표명할 때조차 온유하고 품위 있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저자가 보여주는 시민교양은 과연 비상하다. 저자는 미국 내 이슬람 지도자들과도 대화하고 동성애자들의 장례식에도 참석한다. 그러면서도 공적인 공간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신념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이 견지해야 할 신념은 무엇이고 어디까지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할까? 이 점에서 저자는 절충적이다. 그가 말하는 ‘시민교양이란 우리가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우리 자신도 기꺼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이다.'(153쪽)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도인이 타인에 의해 변화되고자 하는 열린 자세에는 경계선이 존재한다.'(154쪽)

    이 풀러신학교의 총장이 미국 의회에서 어떻게 기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짐작컨대 그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비상한 특권을 포기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에게 있어 예수의 이름을 공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견지해야 할 신념이지 타종교와의 공존을 위해 품위 있게 내려놓아야 할 것은 아닐 것이다. 신념과 품위가 조화될 수 있을까? 이 책이 담고 있는 여러 사례들을 보면 한 시대 최고의 지성과 교양을 갖추었다고 할 만한 풀러신학교 총장에게도 이는 쉬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좀 더 까칠하게 질문해 보자. 타종교와 대화하고자 할 때 내 신념을 고수하면서 부드러운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최선일까? 이때 부드러운 태도란 결국 대화가 벽에 부딪혔을 때 그 책임이 나에게 있지 않음을 말할 수 있는 일종의 보험이 아닐까? 내 신념이 바뀔 수 있음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타종교와의 진정한 대화는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관용의 한계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관용은 아무리 관용적이라 하더라도 관용의 주체가 따로 있고 관용의 대상이 따로 있다. 이 점에서 관용은 결국 강자의 언어이고 일방의 언어다. 『관용에 대하여』의 저자 마이클 왈저는 미국인이면서 유태인인 자신의 경험을 들어 관용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경우를 말하면서, 관용을 윤리적 태도로서만이 아니라 하나의 제도로 제안하였고, 이 제안은 진지하게 살펴볼 만하지만, 『무례한 기독교』의 시민교양으로 말한다면 그 한계가 뚜렷하다고 해야겠다. 『무례한 기독교』의 저자도 시민교양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 즉 ‘다른 한편’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기독교인이 타종교와의 대화를 위해 신념을 바꾸다니! 믿음을 버리고 대화를 한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해 보자.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의 체계 중 어떤 것은 문화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특정 문화 속에서 형성된 것은 문화가 달라지면 그 달라진 맥락 속에서 재해석되고 재구성될 수 있다.

    다시 앞에서 말했던 장면으로 돌아가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 예수의 그리스도 됨, 그리고 그와의 살아있는 관계는 문화가 달라졌다고 해도 바뀔 수 없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표명하는 방식은 문화적으로 형성된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 취임식에서, 의회에서 기독교 목사가 공개적으로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문화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근대 국가체제에서 국가와 기독교의 관계는 필연성도 없고 상호간 구속력도 없다. 국가의 공적 의례에서 기도는 단지 상징적인 의미로 남아 있을 뿐이다. 도리어 미국이라는 국가체제의 이념이 기독교로 포장되는 면이 있다. 기독교의 승리라고도 해석될 만한 이런 문화가 다원주의 사회의 한 구성원인 교회에 꼭 좋은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라면 아마도 이런 체제를 ‘콘스탄티누스주의’라고 규정했을 것이다(스탠리 하우어워스, 월리엄 윌리몬 공저,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 1,2장 참고).

    기독교가 하나의 정치체제 안에서 타종교와 공존하게 된 상황은 교회가 애써 외면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문화의 한 특징이고 엄연한 현실이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가 지녀야 할 공적 태도에 대해 교회는 더 열린 자세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우선 교회가 다원주의 사회에 속해 있다는 이 엄연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할 일이다.

    밴쿠버 신임 총영사 VIEW 방문

    지난 해 12월 취임한 송해영 신임 밴쿠버 총영사가 1월 28일 (금), VIEW에 방문하여 교직원 및 원우회 임원들과 환담하며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송 총영사와 교육 영사가 내방하였고, 원장 전성민 교수와 이계현 행정실장, 노주동 원우회장과 이선화 원우가 만남에 참여하였습니다. 포스막 센터 콜레지움에서 한 시간 반 정도 VIEW의 한국 기독교와 이민 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해 소개하고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VIEW가 한국뿐 아니라, 밴쿠버 한인사회에서도 의미 있는 기여를 해야 한다는 다짐을 새롭게 했습니다.

    2022년 봄학기 VFM

    2022년 봄학기가 시작된 후 첫VFM(View Family Meeting)이 2월 4일 (금), 더비 리저널 파크에서 열렸습니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실내에서 모임을 갖는 것이 조심스러워 프레이저 강가에 자리잡은 파크에서 모였습니다. 이 VFM에서는 이번 학기 함께 공부를 시작한 10명의 신입생 중 7명이 참석하여 재학생들이 처음 만나 교제하는 시간과 VIEW 방문교수로 지난 1년간 함께 했던 경북대 류동규 교수님 부부의 환송, 또 2022년에 VIEW 방문교수로 오셔서 앞으로 1년간 함께 하게 될 송수진 교수님 (고려대, 경영학)과 한영주 교수님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상담학)을 환영하는 시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여전히 코로나19로 녹록치 않은 가운데서 신입 원우들이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VIEW 공동체를 잘 이루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격려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귀국하시는 류동규 교수님이 한국의 일상에 잘 적응하시고 의미 있는 연구를 이어가시길 빕니다. 또한 이번에 VIEW와 함께 하게 된 송수진 교수님과 한영주 교수님이 밴쿠버에 잘 정착하시고 계획하신 일들을 잘 진행해 나가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어려운 가운데서 안전하고 즐거운 VFM이 되도록 애써 준 원우회에 감사드립니다.

    2022년 봄학기 개강

    이제 12월 말까지 짧은 방학을 보내고, 1월 4부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2022년 봄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월 중순까지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온라인으로 진행되던 수업이, 온 캠퍼스 대면 수업이 가능한 과정은 대면 수업으로 전환되었습니다.

    • BIB 540K New Testament Foundations 신약 개론 – 김도현 (streaming)
    • BIB 640K New Testament Theology 신약 신학 – 김도현 (streaming)
    • BOT 502K Elementary Hebrew II 초급 히브리어 2 – 전성민 (on campus)
    • BOT 602K Hebrew Exegesis II 히브리 주해 – 이종경 (on campus)
    • CLD 510K Foundations of Christian Leadership 기독교 리더십 기초 – Randy Wollf & 박진경 (streaming)
    • HIS 641K Modern Intellectual History 근대 지성사 – 최종원 (on campus)
    • HIS 691K Christian View of History and Historical Awareness 기독교 역사관과 역사의식 – 최종원 (on campus)
    • MCS 810K Graduation Project 졸업 프로젝트 – 전성민
    • PES 554K Mission and Peace 선교와 평화 – 김성한 (on campus; modular)
    • PES 652K Theology of Reconciliation 화해의 신학 – 박진경 (streaming)
    • RES 502K Research Strategies 문헌연구방법론 – Bill Badke (online)
    • THS 671K Theology II 신학 2 – Jonathan Wilson & 최종원 (online + Q&A)
    • THS 672 Theology III 신학 3 – 김진혁 (streaming; modular)
    • WVS 500 Worldview Foundations 세계관 기초 – 전성민 (on campus)
    • WVS 600 Philosophical Foundations of Worldview Studies 세계관의 철학적 기초 – 양승훈 (streaming)

    양승훈, 박진경 교수 에스와티니 사역 소식

    기도제목: 몇 가지 EMCU 관련된 기도제목을 드립니다.

    – EMCU 의대(의학과) 허가를 위해 계속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에스와티니를 뒤덮고 있는 죽음의 영이 물러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교육부 산하 고등 교육국(Eswatini Higher Edcational Council, ESHEC) 국장이 상황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 건축이 진행되고 있는 EMCU 채플 빌딩, 실험동, 대학 간판 공사, 정문 앞 등교 하차 지역 공사가 순적히 진행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EMCU 채플의 바닥공사와 실험동의 내부 공사를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 1월 10일에 시작한 월요아침기도회(Monday Morning Prayer Meeting)가 EMCU를 하나로 묶는 영적인 띠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 1월 12일에 다섯 명의 신임 교수면접을 했습니다. 이들 중 세 명을 선발했는데 이들이 EMCU의 교수로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 에스와티니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에스와티니는 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한,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절대왕정국가입니다. 전 세계 220여개 국가들 중에는 왕이 있는 나라들이 많지만 대부분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지 절대왕정, 다시 말해 실제로 왕이 전권을 가지고 다스리는 나라는 매우 드뭅니다. 이 나라를 식민통치하던 영국이 1968년에 이 나라를 독립시킬 때는 당연히 입헌군주제를 물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독립하자마자 곧 바로 왕이 전권을 장악하고 절대왕정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무조건 왕정을 폐지하고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왕이니까 아내를 열 몇 명씩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정도의 국민 수준으로는 절대왕정이나 민주주의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될 때 흔히 서구의 발명품이라는 민주주의는 꽃 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이 나라의 상황으 로는 어느 쪽을 택하든 사회적 혼란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절대왕정 하에서 소수의 큰 도둑들이 있는 것이나 민주화된 사회에서 수많은 좀도둑들이 있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로서는 이 나라에서 왕이 지혜롭게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은데 그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에스와티니 왕과 국민들이 바른 분별력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VIEW 동문소식

    기독교세계관 세미나

    2월 18일(금) 오전 10시에 백석대 장동민 교수님을 모시고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의 기독교세계관 운동”이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립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와 홍보 부탁드립니다.

    신청: https://forms.gle/4tPQixp5ZLpdZF7A9


    밴쿠버 동문회 총회

    2월 18일 오후 8시(태평양 표준시), 차기 임원진 선출 및 교체를 위해 밴쿠버 지역 동문회 총회를 온라인으로 개최합니다. 많은 동문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VIEW 후원

    VIEW 웹사이트인 https://test.view.edu/donation/에 가셔서 “Donation” 버튼을 클릭하시면 곧 바로 후원자 페이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서라도 간편하게 VIEW를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후원

    1월 후원: 김도형, 김민철, 김신정, 김연진, 김인수, 김정욱, 김종우, 김택호, 배덕만, 박기모, 박문식, 박종국, 박흥식, 석종준, 손봉호, 송종철, 양성철, 양승훈, 오성수, 오주희, 우병훈, 유경상, 윤영배, 이대경, 이부영, 이연우, 이영미, 이원도, 장점연, 장호철, 전희경, 정민, 정훈, 채기헌, 채은숙, 최동진, 최현일, 최현종, 허정도, 황성연, 황혜정 (40명, 1,705,000원)

    캐나다 후원

    1월 후원: 강상훈, 김경웅, 김성민, 김영기, 김영웅, 김정용, 김종규, 민동식, 박동욱, 배철진, 변희지, 서문재, 손무성, 손태환, 신찬웅, 신현철, 심우영, 안적선, 연각춘, 유상림, 유승훈, 이귀영, 이동욱, 이명랑, 이미숙, 이삼열, 이성두, 이은표, 이재용, 이종원, 정의환, 조학현, 주광민, 최성은, 함경식, 황선관, 황재훈, Jung Nam, 무명 1인 (39명, $1,270 (일반후원 $1,120 / Endowed Professorship $150))

  • VIEW Finder (2022년 1월호)

    원장 칼럼 (2022년 1월 4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설교)

    “뷰잉”은 예술이다 The Art of VIEWing

    본문: 누가복음 24:30-35

    환영합니다. 오늘 제목은 뷰잉은 예술이다(The art of VIEWing)입니다. 캐나다에서는 집을 보여주는 것을 showing, 보는 것을 viewing이라고 합니다. 제가 말하는 VIEWing은 VIEW하면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VIEW가 VIEW하는 것이 뭘까에 대한 제 생각의 일부를 나누는 것입니다. 뷰에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뷰를 졸업한다면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이와 관련해 제가 오늘 나누고 싶은 주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성경 이야기 전체를 담아내는 해석 공동체

    둘째는, 말씀을 몸으로 구현해 내는 해석 공동체

    셋째는, 성경과 함께 세상을 읽어내는 해석 공동체

    오늘 첫 번째는 “성경 이야기를 전체를 담아내는 해석 공동체”입니다.

    오늘 본문은 유명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이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슬픈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왜 슬픈지 이야기합니다.

    자신들의 바람과는 달리 십자가에서 나사렛 예수가 죽었고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만 예수를 보지는 못했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성경 전체에 나온 자신에 관한 것을 설명하셨습니다. 성경은 깁니다. 양이 많아요. 그리고 다양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자연스러운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우리가 성경을 대해 온 방식을 고려하면 성경의 통일성 보다는 다양성을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성을 강조하면서도 통일성을 놓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 통일성이 있을까요? 성경의 다양한 부분들을 다 엮어 낼 수 있는 표현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무엇 보다 “성경은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어 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체 이야기의 맥락을 놓칠 때 우리의 복음은 축소된 복음이 되고 맙니다.

    두 번째는 “말씀을 몸으로 구현해 내는 해석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이 성경 전체를 통해 자신에 관한 것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설명에 제자들이 어떤 반응을 했는지 이 시점에서는 본문이 침묵합니다. 그저 더 가시려는 예수님을 강권해서 함께 머물 뿐입니다.

    이유도 딱히 말씀 때문이라고 명시적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날이 저물고 있다는 상황을 토대로 초청할 뿐입니다. 이들이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을 때”입니다.

    예수님의 설명해 주셔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이야기 전체를 담아내는 해석학이었지만 예수님을 알아보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알아 본 것은 함께 먹을 때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식탁 공동체가 바로 말씀이 몸으로 구현되는 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식탁 공동체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에 있던 사람과 공간에 대한 모든 구별이 철폐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 주님의 식탁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본 환상이 이 사실을 알려줍니다.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를 만나기 전에 주님께서 그에게 부정한 동물의 환상을 보여주시며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셨으니 먹으라고 하신 것은 동물의 구별이 반영했던 사람들 사이의 구별 또한 없어졌음을 일상에 밀착되게 알려주신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음식 규례를 이방인들에게 강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실용적인 배려이상이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이 사라졌다는 삶에 밀착된 신학적 선언이었습니다(행 15:28-29).

    그리고 예수님의 본을 따라 초대교회는 자신들의 성경 읽기에 부합하는 ‘몸’을 식탁에서, 그리고 식탁 너머에서 만들어 갔습니다.

    “몸’으로 구현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형태의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뷰잉은 이렇게 눈에 보이는 형태의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성경과 함께 세상을 읽어내는 해석 공동체”입니다. 그야말로 뷰 공동체이지요.

    예수님을 알아보았던 제자들은 곧 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했습니다. 이 구절이 성경과 함께 세상을 읽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에게만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을 만났다는 점에서 세상을 읽는 것과 만나는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지만, 동시에 세상 속에서 성경을 읽습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서 성경을 읽습니다.

    성경 읽기는, 그에 토대한 세계관 익히기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만 머무르게 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의 “뷰잉”은 세상에 대한 성경적 시각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또한 세상의 경험 속에서 성경을 다시 새롭게, 그러나 가장 진정성 있게 읽어야 합니다.

    오늘 나눔을 정리합니다.

    성경 이야기 전체를 담아내는 해석, 말씀을 몸으로 구현해 내는 해석, 성경과 함께 세상을 읽어내는 해석, 이것이 뷰잉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다시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모든 것들이 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는 개개인을 향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뷰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뷰의 생활을 통해 성경 이야기 전체를 담아내는 해석 공동체 말씀을 몸으로 구현해 내는 해석 공동체, 성경과 함께 세상을 읽어내는 해석 공동체를 경험하고 꿈꾸는 복을 누리시기를 간구합니다.

    지난 달부터는 지난 2월부터 VIEW에 방문교수로 와 계신 경북대 국어교육학과의 류동규 교수님이 전성민 교수님의 “기독교 세계관 기초” 강의를 청강하시며 느낀 점을 나누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류교수님의 블로그blog.naver.com/ryusway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류동규 교수의 청강일기 (4)

    세계관이라는 범주 설정

    세계관적 범주로서의 이야기(2) – 근원적 층위의 이야기

    성경을 메타 내러티브로 제시하려는 것과는 다른 층위에서 이야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층위에 이야기가 놓여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때 이야기는 성경이 이야기로 되어 있다고 할 때 이야기와는 함의가 좀 다르다. 근원적 층위의 이야기는 완결된 형식이 아닐 수도 있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전인지적 차원에서 우리의 정체성 깊은 곳을 형성하고 있다.

    『은밀한 세계관』의 저자들은 이 책 첫 장에서 다음과 같은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동심원으로 나타낸 그림이다. 이 동심원의 맨 안쪽에 이야기가 자리잡고 있다. 이 그림에서 이야기란 대체 뭘까? 우리의 정체성보다도 더 깊은 차원에 있으면서 정체성을 형성하게 하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아쉽게도 『은밀한 세계관』의 저자들은 이 그림이 보여주는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 책이 설명하지 않는 부분, 즉 정체성을 형성하게 하는 이 깊은 이야기의 차원에 대해 좀 더 들어가 보자.

    성경의 이야기는 우리를 매료시킨다. 우리 존재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린다. 우리를 매료시키는 이야기는 어떻게 우리 존재 가장 안쪽에 자리 잡게 될까?

    어릴 때부터 나를 가장 깊이 매료시킨 성경 이야기는 크리스마스 이야기였다.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인데, 여기에도 여러 작은 이야기들이 있다. 천사가 예수의 나심을 알려주었다는 이야기, 동방박사가 예물을 드렸다는 이야기, 아이를 낳아 구유에 뉘었다는 이야기 등등. 이 여러 이야기들이 향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낮은 곳에 오셨다는 것이고, 사람들이 그것을 경축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존재 가장 안쪽에 자리 잡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제임스 스미스가 『습관이 영성이다』에서 말한 ‘예전적 형성’이라는 개념을 떠올리는 것이 좋을 듯하다. 예전이란 단순하게 말하면 반복적인 의례이다. 크리스마스도 이런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주일학교를 다녔던 1980년대의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한 달 전부터 모여서 장식도 만들고 노래나 연극 연습도 하면서 크리스마스를 준비했다. 또 지금도 그렇듯이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이 되면 교회의 성도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공연을 했다. 이 모두가 해마다 반복되는 의례였다. 제임스 스미스는 이런 예전이 우리의 존재, 우리의 영성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예배도 이런 예전적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디자인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모임-들음-사귐-보냄’이라는 서사 구조가 그것이다.

    제임스 스미스는 ‘예배는 소설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인상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사실일까? 소설이 작동하는 방식이란 어떤 것인지, 가장 전형적인 소설 읽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떠올려 보자. 독자가 이야기에 몰입하게 될 때 읽는 독자의 마음 속 어느 곳에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가 준비된다. 거기에 이야기가 펼쳐지는 상황이 있고 그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움직여 나간다. 독자는 상상적으로 이 인물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으로 생생하게 경험한다. 예배에서 예전적 형성이 일어나는 과정도 이와 같다는 뜻일까? 이야기와 경험이 만나는 곳에서 우리 존재의 깊은 부분이 형성된다는 점은 타당해 보인다.

    이야기와 경험이 만나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다니던 교회 주일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연극을 준비했다. 무슨 일이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 연극 공연을 위해서 연출자를 초빙해 왔던 것 같다. 연기 지도도 받고 소품과 분장도 다 준비하고 꽤 공들여서 연극을 준비했다. 대본은 아마도 스크루지 이야기의 변형이었던 것 같다. 욕심 많은 남자가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회심을 하게 되는 흔한 이야기이다. 사실 그때도 그 연극의 이야기를 완결된 형태로 알지 못했다. 나는 할아버지 역할이었는데 잠깐 나와서 몇 마디 대사만 하고 들어가는 단역이었다. 하지만 그걸 준비하기 위해서 한 달 동안 연기 연습도 하고 공연 당일에는 정성 들여 할아버지 분장을 했다. 연극은 대성공이었다. 모든 성도들이 연극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아기 예수의 오심을 기뻐했다.

    내게 이 경험은 부모님이나 친척들보다 더 큰 모임, 즉 예수로 인해 모인 더 큰 모임에서 진정으로 수용되고 사랑받은 경험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원형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 경험이 크리스마스 이야기와 결합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크리스마스 이야기, 즉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는 사랑과 평화와 기쁨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온 사건으로 그날 연극 공연의 분위기와 함께 내 존재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경험 자체로 보자면 일회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크리스마스 이야기와 결합되고 반복적인 크리스마스 예전을 통해 존재의 깊은 부분을 형성하게 된 것 같다.

    다시 『은밀한 세계관』이 제시한 그림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이야기가 우리 존재의 근원을 형성하게 된다는 그림의 의미는 한 이야기가 우리 자신의 경험이 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성경의 어떤 이야기는 그것이 읽고 듣게 될 때의 감정 상태, 특유의 분위기 등과 함께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경험과 결부됨으로써 우리 정체성의 근원에 새겨지게 된다. 이 하나의 예로 이야기가 정체성보다 더 깊은 세계관적 범주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 그림을 설명하기에 여전히 부족한 것 같다. 이야기, 정체성, 세계관 이 모두가 얼마나 심오한 범주인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심오한 존재인지 생각해 본다.

    https://blog.naver.com/ryusway/222571609193

    2022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코로나19가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2022년 봄학기에 9명의 신입 원우들이 입학하여 새로이 공동체를 이루어가게 되었습니다. 캐나다에 오미크론 변이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실내 모임이 금지되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오프라인에서 하지 못하고, 1월4일 줌을 통해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원장 전성민 교수님이 The Art of VIEWing이라는 제목의 환영 설교에서 VIEW에서 성경을 어떻게 읽어갈 것인지에 대해, VIEW라는 공동체에서 어떠한 것을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해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어 신입 원우들이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VIEW를 찾게 된 이야기와 앞으로의 기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밴쿠버의 삶에 잘 정착하고 건강하게 학업을 진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2년 봄학기 강의 일정

    이제 12월 말까지 짧은 방학을 보내고, 1월 4부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2022년 봄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인해 1월은 온라인 강의로 전환되었습니다. 그 이후는 상황에 따라 변경 예정입니다.

    • BIB 540K New Testament Foundations 신약 개론 – 김도현 (streaming)
    • BIB 640K New Testament Theology 신약 신학 – 김도현 (streaming)
    • BOT 502K Elementary Hebrew II 초급 히브리어 2 – 전성민 (on campus)
    • BOT 602K Hebrew Exegesis II 히브리 주해 – 이종경 (on campus)
    • CLD 510K Foundations of Christian Leadership 기독교 리더십 기초 – Randy Wollf & 박진경 (streaming)
    • HIS 641K Modern Intellectual History 근대 지성사 – 최종원 (on campus)
    • HIS 691K Christian View of History and Historical Awareness 기독교 역사관과 역사의식 – 최종원 (on campus)
    • MCS 810K Graduation Project 졸업 프로젝트 – 전성민
    • PES 554K Mission and Peace 선교와 평화 – 김성한 (on campus; modular)
    • PES 652K Theology of Reconciliation 화해의 신학 – 박진경 (streaming)
    • RES 502K Research Strategies 문헌연구방법론 – Bill Badke (online)
    • THS 671K Theology II 신학 2 – Jonathan Wilson & 최종원 (online + Q&A)
    • THS 672 Theology III 신학 3 – 김진혁 (streaming; modular)
    • WVS 500 Worldview Foundations 세계관 기초 – 전성민 (on campus)
    • WVS 600 Philosophical Foundations of Worldview Studies 세계관의 철학적 기초 – 양승훈 (streaming)

    VIEW 교수 출간 서적 수상

    전성민 교수님의 “세계관적 성경읽기” (성서유니온)가 제38회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신앙일반 국내 부문 우수상에 선정되었습니다. 시상식은 2월 말로 예정된 기독교출판협회 정기총회에서 진행됩니다.

    자세한 소식은 http://news.kmib.co.kr/article…


    최종원 교수님이 기획하여 출간된 “신데카메론”(복있는사람)이 2021년 국민일보 일반 신앙 분야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시상식은 코로나 방역 상황이 진정된 이후 열릴 예정입니다.

    자세한 소식은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495412

    양승훈, 박진경 교수 에스와티니 사역 소식

    EMCU-예수대학교 협력 – 지난 12월 16일자로 EMCU와 전주 예수대학교(총장 김찬기)가 학술협력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양승훈 총장님 부임 이후 첫 대외 협약입니다. 이 협약은 2021년 12월 16일부터 2026년 12월 15일까지 5년간 유효합니다. 전주에 위치한 예수대학교는 예수병원에 소속된 간호학교로 1950년에 출발했으며, 현재는 간호학과 및 사회복지학과 등 2개의 학과로 구성된 소규모 대학입니다. 전주 예수병원은 1898년 미국 여성 의료 선교사인 마티 잉골드(Dr. Mattie B. Ingold)에 의해 설립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병원입니다. EMCU 간호학과 및 사회복지학과와 활발한 교류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VIEW 후원

    VIEW 웹사이트인 https://test.view.edu/donation/에 가셔서 “Donation” 버튼을 클릭하시면 곧 바로 후원자 페이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서라도 간편하게 VIEW를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후원

    12월 후원: 김도형, 김민철, 김신정, 김연진, 김인수, 김정욱, 김정일, 김종우, 김택호, 배덕만, 박기모, 박문식, 박정심, 박종국, 박흥식, 석종준, 손정엽, 양성철, 양승훈, 오성수, 오주희, 우병훈, 유경상, 윤영배, 이대경, 이부영, 이연우, 이영미, 이원도, 이형직, 장점연, 전희경, 정민, 정훈, 채기헌, 채은숙, 최동진, 최현일, 최현종, 허정도, 황성연, 황혜정 (42명, 1,255,000원))

    캐나다 후원

    12월 후원: 강상훈, 김경웅, 김성민, 김영기, 김정용, 김종규, 민동식, 박동욱, 박헌호, 배철진, 변희지, 서문재, 손무성, 손태환, 신찬웅, 심우영, 안적선, 연각춘, 유상림, 유승훈, 이귀영, 이동욱, 이명랑, 이미숙, 이삼열, 이성두, 이은표, 이재용, 이종원, 정의환, 조학현, 주광민, 최성은, 함경식, 황선관, 허민주, Jung Nam, 밴쿠버주사랑교회, 무명 2인 (41명, $1,550 (일반후원 $1400 / Endowed Professorship $150))

  • VIEW Finder (2021년 12월호)

    원장 칼럼

    생명을 선택하라

    “타락”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일반적인 의미로는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나쁜 길로 빠짐”이며 기독교에서는 “죄를 범하여 불신의 생활에 빠짐”을 의미한다고 나온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관에서 말하는 “타락”은 국어사전이 말하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창조세계 전체에 대재난을 가져온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말한다. 그리고 이 타락이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이 하나님의 선한 창조와 거리가 있는 이유다. 다시 말해, ‘선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좋게 만드신 세상에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악과 고통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불순종”, 즉 타락 때문에 세상이 왜곡되고 오염되었다고 답한다.

    타락의 총체성

    이러한 타락 이해에 있어 세 가지 측면을 좀더 명확히 짚을 필요가 있다. 먼저, 타락의 범위다. 죄는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창세기 3장은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사람들 사이의 관계, 사람과 나머지 창조세계의 관계가 다 어긋났음을 알려 준다. 사실 이것은 매우 총체적인 진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사적인 영역의 문제로만 생각할 경우 죄에 대한 이해 또한 사적인 영역에 제한시켜 창세기 3장이 담고 있는 타락의 총체적인 함의를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게 된다. 죄에 대한 이런 빈곤한 이해에 대해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죄에는 사회적 차원과 역사적 차원이 있음을 역설한다. 우리는 죄로 점철된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의 결과들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만들어진 도덕적 틀 안에서 살아가며(죄의 역사적 차원) 그렇게 만들어진 구조와 관습 때문에 죄가 합리화된다는 것이다(죄의 사회적 차원). 이것이 타락의 총체성이다.

    타락의 한계

    그런데 타락이 창조된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타락의 총체성이 종종 타락이 모든 것을 완전히 망가뜨렸다는 식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게다가 “전적 타락”이라는 개념 때문에 타락의 힘을 성경이 보여 주는 것보다 과대평가하기 쉽다. 타락이 총체적이라는 말은 타락이 모든 것을 완전히–창조를 말살시킬 정도로–망가뜨렸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의 전적 타락이라는 개념은 인간에게 스스로 하나님을 향해 돌이켜 나아가거나 온전히 사랑할 능력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존재의 본질이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구속과 상관없이도 창조세계에 나타난 죄의 파괴적인 영향은 억제되고 상쇄된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순종이 그분의 창조를 전적인 혼돈에 빠지게 하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반대로 그분은 모든 파괴의 위력 앞에서 자신의 창조세계를 보존하신다.…타락한 인간도 여전히 인간이며, 부정직한 사업도 여전히 사업이고, 무신론적 문화도 여전히 문화며, 인본주의적 통찰력도 여전히 참된 통찰력인 이유는 바로 [창조] 때문이다.

    타락은 운명이 아니다, 생명을 선택하라

    타락이 창조를 붕괴시키지 못했으며 창세기 3장에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임한 저주들은 사람과 창조세계가 벗어나지 못하는 영원한 운명이 아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3:16을 근거로 이제는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창조의 능력과 타락의 한계를 간과한 심각한 잘못이다. “남자가 여자를 다스릴 것”이라는 말은 타락 이후 벗어날 수 없게 된 남녀의 운명이 아니며 명령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반역한 사람들이 겪게 될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을 서술하는 것일 뿐이다.

    가나안 땅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는 그들 앞에 놓인 “생명과 복, 사망과 화” 사이에서 살기 위해 생명을 택하라고 도전한다(신 30:15, 19). 죽음을 앞둔 여호수아도 세겜에서 이스라엘에게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라고 말한다(수 24:15). 이런 선택 앞에서 가인은 그의 부모와 같은 선택을 했으며, 이스라엘 사람들도 결국 여호와를 버리고 사망과 화를 선택하고 말았다. 그것은 운명이 아니라 그들의 선택이었다.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한 선택의 도전이 주어진다. 순종할 것인가, 불순종할 것인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낌없이 주시는 마음을 믿고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소명에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관대하심을 의심하며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 할 것인가? 타락은 참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 주어진 자유에 내재된 불순종의 가능성이 현실화된 것이다. 그렇기에 타락은 우리에게 다시금 선택을 요구한다. 타락은 운명이 아니다. 각 사람의 죄와 타락은 그 사람의 책임이다.

    지난 달부터는 지난 2월부터 VIEW에 방문교수로 와 계신 경북대 국어교육학과의 류동규 교수님이 전성민 교수님의 “기독교 세계관 기초” 강의를 청강하시며 느낀 점을 나누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류교수님의 블로그blog.naver.com/ryusway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류동규 교수의 청강일기 (3)

    세계관이라는 범주 설정

    세계관 범주로서의 이야기(1) – 성경의 메타 내러티브

    현대의 기독교 세계관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거센 도전을 받았다. 기독교 세계관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맞서면서 혹은 대화하면서 자기 갱신을 모색했는데 가장 뚜렷한 흐름은 이야기를 주요 범주로 삼아 기독교 세계관을 다시 진술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월터스의 책 『창조 타락 구속』 개정판에 실린 후기, 제임스 사이어의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의 최근 개정판의 세계관 개념 규정, 그리고 리처드 미들턴과 브라이언 왈쉬가 함께 쓴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 등에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기독교 세계관 논의가 이야기 범주를 끌어들이면서 가장 먼저 시도한 작업은 성경의 메타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일이었다. 메타 내러티브란 거대한 구도를 지니면서 통일성과 완결성을 갖춘 이야기를 말한다. 『창조 타락 구속』 개정판에 수록한 월터스와 고힌이 함께 쓴 후기에서도 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성경의 내러티브를 여섯 막으로 이루어진 드라마로 기술한다.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1막 – 창조
    • 2막 – 인간의 반역
    • 3막 – 이스라엘을 통한 구속 계획과 역사
    • 4막 – 예수의 죽음과 부활
    • 5막 –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 증거
    • 6막 – 마지막 심판과 창조 세계의 갱신

    『은밀한 세계관』의 저자들도 5막으로 이루어진 메타 내러티브를 기술하고 있다. 1막 1장 창조, 1막 2장 인간의 창조, 2막 타락, 3막 언약, 4막 성육신, 5막 구원.

    미로슬라브 볼프의 책 『세상에 생명을 주는 신학』을 기독교 세계관의 새로운 버전, 일종의 포스트 기독교 세계관으로 본다면 이 책의 메타 내러티브 구성 방식도 눈여겨볼 만하다. 볼프는 창조에서 완성에 이르는 짧은 점선과, 창조에서 타락, 구속(성막, 그리스도, 교회)을 거쳐 완성에 이르는 우회로의 실선으로 이루어진 이원 구조의 메타 내러티브를 제안하고 있다.

    세계관 논의들은 왜 성경을 메타 내러티브로 제시하고자 할까? 다 그런 건 아니더라도 초기의 몇몇 버전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것 같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단순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핵심적인 특징으로 메타 내러티브에 대한 거부를 들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보기에 근대주의는 메타 내러티브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메타 내러티브는 모두 억압적이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종류의 메타 내러티브를 해체하고자 했고 이런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기독교 세계관의 입장에서 보자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불편한 상대다. 기독교 세계관도 기본적으로는 근대성 기획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불편함을 이해할 만하다. 기독교 세계관은 여러 종류의 근대주의에 맞서 기독교가 하나의 완결된 지적 체계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 시도였는데 갑자기 근대주의와는 전혀 이질적인 새로운 상대가 나타난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은 기독교의 체계가 완결된 것이고, 여타의 근대주의 이념들보다 더 일관된 것이라는 점을 열심히 변증해 왔는데(제임스 사이어의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이 하고자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완결성, 일관성, 이런 범주 자체를 의문시했다. 그런 범주 자체에 억압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에 맞서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이 메타 내러티브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메타 내러티브는 억압적이지 않다는 걸 보여주어야 했다.

    성경을 메타 내러티브로 제시하는 것은 어떤 유익이 있을까? 하나의 답은 이 이야기를 통해 세계와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 타락 구속』 후기에서 마이클 고힌은 리처드 미들턴과 브라이언 왈쉬, 그리고 톰 라이트가 던지는 세계관적 물음을 다시 가져온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치료책은 무엇인가, 여기에 하나 더해서 지금이 어느 때인가라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해 성경의 메타 내러티브가 존재론적 해답을 준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삶이 성경 이야기의 어디에 놓여 있는지 알게 되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대응으로 성경의 메타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시도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나로서는 회의적이다. 성경을 메타 내러티브로 재구성할 수 있겠으나, 이렇게 메타 내러티브로 환원할 경우 그것을 어떤 틀로 구성하든 간에 거기에는 잉여, 즉 그 틀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남겨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성경을 메타 내러티브로 제시해 놓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억압적이지 않다고 하는 것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적어도 포스트모더니스트나 모스트모던 문화에 익숙한 이들의 동의를 얻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성경의 내러티브가 억압적이지 않은 이유는 그 안에 메타 내러티브로 환원되지 않는 여러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성경 이야기를 메타 내러티브로 환원하지 않고 도리어 이야기의 균열 지점에 주목하는 읽기가 성서 해석학에서도 시도되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전 교수님의 『사사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도 사사기의 이야기를 구원 내러티브로만 읽지는 않는다. 기드온 이야기의 경우,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에게 와서 당신과 당신 아들들이 우리를 다스려달라고 했을 때 기드온은 나와 내 아들들이 너희를 다스리지 않겠고 여호와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 말을 뒤에 이어지는 기드온의 삶에 비추어 보면 겉으로 드러난 말의 의미로만 해석할 수 없다. 여기서 겉으로 드러난 말의 의미와 충돌하는 지점에 주목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기드온 이야기를 메타 내러티브로 환원하지 않는 읽기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성경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방식을 이야기 수행, 즉 이야기가 작동하는 방식의 관점에서 설명해 볼 수도 있다. 요즘 나에게 영향을 주는 성경 이야기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갈릴리 호수에 나타나신 이야기이다. 실의에 빠진 제자들이 갈릴리로 물고기를 잡으러 가지만 밤새 잡지 못한다. 그 새벽에 예수님이 호숫가에 나타나셨고. 누군가가 주님이시다, 하고 외치는 소리. 베드로는 헤엄을 쳐서 물가로 간다. 이때 예수님이 호숫가에 불을 피워 놓고 생선을 구워 놓으셨다. 예수님이 나눠주시는 생선을 먹으면서 제자들은 모두 침묵하지 않았을까? 많은 생각들이, 옛일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같은 문답이 세 번 오간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양을 먹이라.

    이 이야기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까? 내 생각에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 꼭 메타 내러티브로 통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이야기가 우리 일상을 뚫고 들어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 되는 순간이 있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 자신이 그 이야기 속으로 끌려 들어가 그 이야기에 사로잡히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 속 인물에게 감정 이입을 하는 것 이상이다. 내가 바로 그가 되고, 그 순간 나는 예수 사건에 참여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 경험이 바로 하나님 나라 경험이 아닐까? 이야기가 작동하는 방식은 우리가 성경의 메타 내러티브를 인식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인 것 같다. 인식보다 더 심오한 차원에서, 그리고 더 역동적인 방식으로 이야기가 우리 삶을 뚫고 들어와 우리 삶을 형성하고 이끌어가게 된다.

    https://blog.naver.com/ryusway/222570605187

    2021년 가을학기 종강 및 페이퍼데이

    코로나19로 인해 세 학기 동안 온라인으로만 진행되던 강의가 이번 가을학기에는 온라인과 대면강의가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오랜만에 강의실에서 다시 만난 원우들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서로 교제했습니다. “세계관기초” 수업에서는 매 강의 후에 점심식사를 같이 하며 깊은 사귐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렇게 훌쩍 가을학기가 끝났습니다. 학기를 보내면서 건강 때문에 병원신세를 진 분들도 있었고, 또 가족의 슬픈 일을 당해 마음 아파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원우회를 중심으로 서로 돌아보고 슬픔과 아픔을 보듬고 나누었습니다. 지난 12월9일에는 한학기를 마친 원우들의 페이퍼와 졸업생들의 졸업프로젝트를 서로 발표하는 페이퍼데이를 줌(zoom)으로 가졌습니다. 모두 7개 세션에 14명이 발표하였습니다. 매학기마다 발표하는 주제와 수준이 높아지고 있어 참석한 분들 모두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발표자 및 발표 주제

    • 오지훈 (졸업프로젝트) “누가문서에 담긴 제자도”
    • 오숙정 (복음서의 신학과 윤리) “마가복음 기독론이 말해주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정”
    • 서미숙 (졸업프로젝트) 『나에게 일어났던 최고의 일, 남편의 외도』 번역
    • 김한별 (중세지성사) “한국 신학교 개혁 방향 모색을 위한 중세 대학 형성 및 발전사 고찰”
    • 서민아 (결혼 및 의사소통) “원가족이 부부관계에 미치는 영향”
    • 김경진 (중세지성사) “중세 여성 신비가 힐데가르트 폰 빙엔 – 삶과 사상 속 음악적 세계관 연구”
    • 손지현 (신학 1) “칭의론을 통해 발견한 하나님의 정의”
    • 김자경 (졸업프로젝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넘어서기”
    • 한희수 (신학 1) “신정론과 고통에 대한 실천적 접근”
    • 정은진 (졸업프로젝트) “중세 여성신비가 연구”
    • 성경훈 (졸업프로젝트) 『선교적 교회로 가는 길』 번역
    • 이선화 (창조론) “평범이가 설명하는 진화론 이야기”
    • 임은석 (졸업프로젝트) “신망애 윤동주: 시인 윤동주의 삶과 글을 통해 살펴보는 기독교 신앙 이야기”
    • 김민호 (졸업프로젝트) “혐오와 한국 개신교 — 혐오의 종교를 벗어나기 위한 제언”

    VFM, 『세계관적 성경읽기』 북토크 와 졸업생 환송회

    학기 초와 학기 말에 갖는 VFM(View Family Meeting)은 신입 원우들을 환영하고, 졸업 원우들을 환송하는 행사입니다. 학기가 마무리되고 페이퍼데이를 끝낸 지난 12월11일 토요일 학교 강의실에서 2021년 마지막 VFM을 가졌습니다. 이번 VFM은 전성민 교수님이 올 초 출간한 『세계관적 성경읽기』 북토크와 졸업생 환송회를 겸하는 자리였습니다. 북토크는 현재 VIEW의 방문교수로 와 계신 경북대 류동규 교수님이 저자인 전성민 교수님과 대담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류 교수님은 국문학자 답게 책의 세밀한 내용과 글의 뉘앙스까지 찾아내어 밀도 있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또한 참석자들도 다양한 질문들을 통해 한국 교회와 자신을 성찰하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원우회에서 풍성하게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마친 후 7분의 졸업원우들을 위한 환송회가 이어졌습니다. 졸업생 중 현재 한국에 귀국하신 임은석 목사님을 제외한 여섯 명의 졸업생 (정은진, 김민호, 성경훈, 오지훈, 서미숙, 김자경)들과 가족들이 참석하여 그간 VIEW에서 경험한 바를 나누며 감사하고 후배들을 격려하였습니다. 특별히 아프리카 에스와티니에 계신 양승훈 교수님과 박진경 교수님이 영상으로 축하 메시지를 전해주어 분위기를 더욱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번에 졸업하지는 않지만 안식년을 마치고 선교지와 한국으로 각각 돌아가는 이은준 원우님과 김한별 원우님이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2022년 봄학기 강의 일정

    이제 12월 말까지 짧은 방학을 보내고, 1월 초부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2022년 봄학기가 시작됩니다. 봄학기는 다음과 같은 강의가 개설됩니다.

    • BIB 540K New Testament Foundations 신약 개론 – 김도현 (streaming)
    • BIB 640K New Testament Theology 신약 신학 – 김도현 (streaming)
    • BOT 502K Elementary Hebrew II 초급 히브리어 2 – 전성민 (on campus)
    • BOT 602K Hebrew Exegesis II 히브리 주해 – 이종경 (on campus)
    • CLD 510K Foundations of Christian Leadership 기독교 리더십 기초 – Randy Wollf & 박진경 (streaming)
    • HIS 641K Modern Intellectual History 근대 지성사 – 최종원 (on campus)
    • HIS 691K Christian View of History and Historical Awareness 기독교 역사관과 역사의식 – 최종원 (on campus)
    • MCS 810K Graduation Project 졸업 프로젝트 – 전성민
    • PES 554K Mission and Peace 선교와 평화 – 김성한 (on campus; modular)
    • PES 652K Theology of Reconciliation 화해의 신학 – 박진경 (streaming)
    • RES 502K Research Strategies 문헌연구방법론 – Bill Badke (online)
    • THS 671K Theology II 신학 2 – Jonathan Wilson & 최종원 (online + Q&A)
    • THS 672 Theology III 신학 3 – 김진혁 (streaming; modular)
    • WVS 500 Worldview Foundations 세계관 기초 – 전성민 (on campus)
    • WVS 600 Philosophical Foundations of Worldview Studies 세계관의 철학적 기초 – 양승훈 (streaming)

    위의 방식들은 봄학기 밴쿠버 지역 팬데믹 진행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양승훈, 박진경 교수 에스와티니 사역 소식

    양승훈 교수님의 EMCU 후원재단 설립에 대한 취지와 기도제목을 나눕니다.

    “지난 두 달동안 EMCU 근무를 하면서 저는 교직원 인터뷰와 더불어 대학 현황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특히 대학의 재정적인 흐름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현재의 대학 재정 상태로는 EMCU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현재로서는 교직원들의 인건비를 대폭 삭감하든지, 정부로부터 약속한 보조금을 받아내든지, 아니면 자체적인 후원회를 만들어서 국내외적인 후원 받든지 해야 합니다. 하지만 교직원 월급을 삭감하는 것은 가능한 방안이 아닙니다. 저는 교육부나 재무부 등 유관부처와 국회의 유관 상임위원들을 대상으로 정부가 약속한 보조금을 모두 달라고 끊임없이 조를 겁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재정 상태를 감안한다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마지막 남은 옵션은 독자적인 후원재단을 설립하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11월 4일 오후 3시부터는 EMCU에서 후원재단 설립을 위한 준비모임을 개최했습니다. 우선 김종양 선교사님이 아는 지역 내 실업인들 일곱 분을 대학에 초청하여 대학의 현황을 설명하고 후원재단에 참여해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모임에는 EMCU 사역에 관심이 많은 7명의 실업인들을 초청했는데 6명은 기독 실업인이고, 1명은 힌두교 실업인이었습니다.

    이 모임 이후에 후원재단을 설립하기 위한 행정적인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11월 11일에 열리는 정기 이사회(Council)에 상정해서 법제화했습니다. 이곳 후원재단을 통하여 얼마나 후원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재의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하고 EMCU가 에스와티니의 의료체계를 업그레이드 해서 이 나라 국민들을 영육간에 강건케 하는 의과대학이 딜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가을학기 학사안내

    9월에 가을학기가 시작된 이래 이제 학기가 종반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작년 3월말부터 대면 수업이 중단되었는데, 1년 반 만에 대면 수업과 온라인 수업이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학기 개설된 수업은 다음과 같습니다.

    • BIB 505K Biblical Hermeneutics 성경해석학 (전성민) – 오프라인
    • BIB 520K Old Testament Foundations/BIB 620K Old Testament Theology 구약개론/구약신학 (전성민) – 오프라인
    • BOT 501K Elementary Hebrew I 초급 히브리어 (전성민) – 온라인
    • BOT 601K Hebrew Exegesis I 히브리어 주해 (이종경) – 온라인
    • FSC 510 Marriage and Communication 결혼과 의사소통 (박진경) – 온라인
    • HIS 541K History of Christianity II 교회사 2 (최종원) – 오프라인
    • HIS 642K Medieval Intellectual History 중세 지성사 (최종원) – 오프라인
    • MCS 810K Graduation Project 졸업 프로젝트 (전성민) – 온라인
    • PES/BNT 556 Theology and Ethics of the Gospels 복음서의 신학과 윤리 (김도현) – 온라인 (국경 개방 시 Q &s; A session은 오프라인)
    • RES 502K Research Strategies 문헌연구방법론 (Bill Badke) – 온라인
    • SCS 503 Christianity and Creation Studies 기독교와 창조론 (양승훈) – 온라인
    • THS 571K Theology 1 신학 1 (박진경) – 온라인
    • WVS 500 Worldview Foundations 세계관기초 (전성민) – 오프라인

    위의 방식들은 가을학기 밴쿠버 지역 팬데믹 진행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2021 VIEW 동문 포럼

    VIEW 동문 세미나가 12월 3일(금) 10시(밴쿠버는 2일 오후 6시)에 온라인으로 열렸습니다. 이번 동문 세미나에서는 송인규 교수님과 VIEW 동문인 송철호 목사님이 강사로 섬겨주셨습니다.

    VIEW 후원

    VIEW 웹사이트인 https://test.view.edu/donation/에 가셔서 “Donation” 버튼을 클릭하시면 곧 바로 후원자 페이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서라도 간편하게 VIEW를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후원

    11월 후원: 김도형, 김민철, 김신정, 김인수, 김정욱, 김정일, 김종우, 김택호, 나용균, 배덕만,
    박기모, 박문식, 박정심, 박종국, 박흥식, 석종준, 양성철, 양승훈, 오성수, 오주희, 우병훈, 유경상, 윤영배, 이대경, 이부영, 이연우, 이영미, 이원도, 이형직, 장점연, 전희경, 정민, 정훈, 채기헌, 최동진, 최현일, 허정도, 황성연, 황혜정 (39명, 114만원)

    캐나다 후원

    11월 후원: 강상훈, 김경웅, 김성민, 김영기, 김영웅, 김정용, 김종규, 민동식, 박동욱, 박헌호, 배철진, 변희지, 서문재, 손무성, 손태환, 송은아, 신찬웅, 심우영, 안적선, 유상림, 유승훈, 이귀영, 이동욱, 이명랑, 이미경, 이미숙, 이삼열, 이성두, 이은표, 이재용, 이종원, 정의환, 조학현, 주광민, 채은숙, 최성은, 최소연, 함경식, 황선관, 허민주, Jung Nam (41명, $1,545 (일반후원 $1395 / Endowed Professorship $150))